코코아
몇 번이고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이곳은 도시의 절벽이다. 옥상의 차가운 공기가 빨려 들어온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이 이 도시로부터 떠날 수 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던 과거와도 멀어질 수 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람은 쉽게 행동을 옮길 수가 없었다. 아직도 뭔가 미련이 남은 걸까. 옥상에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유령처럼 존재를 잃어갈 때마다 이곳에 왔었다.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지만 그 때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할 이유 하나 찾지 못하면서도 가람은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그 자리에 계속 고여 있다.
옥상에서 내려온 뒤에 보는 세상은 평소보다도 더 적막하고 싸늘하다. 새벽이라 사람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외로움이 존재한다. 혼자서 멍하니 첫 차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가람은 정류장 표지에 기대어 몸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숙였다. 새벽 내내 그곳에 있었던 지라 피로를 호소하는 몸에 눈이 슬슬 감긴다.
‘누가 보면 가출 청소년인줄 알겠군’
그러고 얼마쯤 지났을까. 가람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앞에 있는건 붉은 머리의 소년이다.
“이런 곳에서 자면 감기 걸려”
소년의 말투는 또래의 고등학생답지 않게 상냥했다. 사실 가람은 이렇게 남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가 다가서면 자기도 모르게 털을 세우고 만다.
“상관없잖아”
소년은 그래도 추우니까... 하며 말을 흐리며 난감한 듯 웃는다. 그러더니 불쑥 손에 쥐고 있던 음료를 내민다.
“어...... 이거 아직 입 안댔으니까, 괜찮다면 너 마셔.”
방금 그런 말을 들어놓고 이런 행동이라니 붙임성도 좋다. 가람은 저도 모르게 내민 음료를 받았다. 얼어붙었던 손에 온기가 전해진다. 고맙다는 말 대신 빨대를 물었다. 따뜻한 코코아가 몸에 퍼지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소년은 그런 가람을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가람은 모르겠지만 소년은 가람을 본 적이 있었다. 반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라 지나가면서 몇 번 마주쳤다. 언제나 혼자서 아무 말 없이 걷는 가람의 모습에 한 번쯤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도통 기회가 없었다. 오늘 일찍 일어난 건 지금을 위해선지도 모른다.
“그럼,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
가람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씨익 웃고는 돌아섰다. 소년의 발걸음이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곧 버스가 도착해서 가람도 몸을 일으켰다. 다 마신 캔을 버릴까 하다가 들고 올라탄다. 아직도 캔을 쥔 손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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