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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19 [찬현] 꽃 한 송이
  2. 2014.10.19 [건가람] 학교_전력 60분
  3. 2014.10.19 [찬현] 달 上
  4. 2014.10.19 [찬가람] 코코아_전력 30분
  5. 2014.10.19 [찬가람] 달콤함_전력 60분

꽃 한 송이

아직 방을 치울 엄두가 않는다. 이곳의 시간은 밖보다 조금 느리게 흘러서 네 모든 것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제 나는 잠든 너의 파리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삼키는 것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즐거웠던 추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이제 나에게는 모두 짐이다. 어째서 너만 나를 두고 홀몸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린 건지.

 

일어서는 것도 버거워하는 주제에 밖에 나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너의 투정에 못 이겨 짚 앞의 공원에 산책을 간 적이 있었다. 전에는 매일 봤었던 흔한 풍경이 뭐가 좋다고, 너는 연신 미소를 띠며 나를 불러댔었지. 공자, 이것 보십시오. 나비가 절 따라다닙니다! 구름이 정말 예뻐요. 나는 그 때 너의 뒤로 다가가 동백꽃 한 송이를 너의 머리에 올려 주었었다. 남자에게 무슨 꽃이냐며 쑥스러운 듯 꽃잎처럼 얼굴을 붉히던 너의 모습이 나에겐 너무 생생해서 아직도 손을 뻗으면 너의 발그레한 뺨을 쓰다듬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네가 없이 난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너는 잠깐 여행을 떠난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았다. 손에 잡히는 말라비틀어진 꽃잎이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너는 이미 없는데도 나는 환상이 실어다주는 너의 향기 속에서 그저 갇혀있다. 너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자꾸 피어난다. 그 날의 그 붉은 꽃잎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면서도 자꾸.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자꾸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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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흰 머리의 덩치 좋은 청년이 다가오자 가람은 옆에 둔 가방을 치웠다. 며칠 전부터 매 수업시간마다 제 옆 자리에 앉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옆에 앉아도 되냐고 묻더니 요새는 그냥 말없이 옆에 선다. 그것이 몇 번 반복되자 서로 모르는 사이였지만 자연스럽게 늘 같이 앉는 관계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사나 대화를 하는 사인건 아니라 수업하기 전까지 어색한 분위기에 가람은 늘 휴대폰만 만진다. 연락 하나 오지 않는 폰으로 이것저것 장난만 치다가 옆 자리의 사람은 뭘 하나 눈동자만 돌려 흘긋 쳐다보았다. 자신과 다르게 키도 크고 몸도 좋은 이 남자는 얼굴마저 조각 같이 잘생겼다. 요새 광고에 자주 나오는 여자 연예인이랑 닮은 듯도 하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여자애처럼 생겼다는 건 아니지만. 저 정도 외모면 따라다니는 계집애들도 많을 텐데 왜 자기처럼 혼자 수업을 듣고 있는 건지. 성격이 엄청 이상할지도 몰라, 가람은 속으로 괜히 흉을 보았다.

12시가 되자 조교가 출석부를 들고 강단에 선다. 이 수업은 수강인원이 200명이나 되는 대형 강의라 출석을 다 부르는 것도 일이다. 그조교는 항상 적당히 눈에 보이는 대로 이름을 부르는 듯하다. 그래서 수업이 시작한지 제법 지났는데도 아직 한 번도 이름이 안 불린 사람들도 있다. 가람 옆의 남자도 그 중 하나다. 가람은 몇 번 출석이 불린지라 그는 가람의 이름을 아는데 자기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은 왠지 진 기분이다. , 옆의 남자가 자신에게 관심 없다면 기억도 못하긴 하겠지만.

수업이 시작되고, 강의실엔 알아듣지도 못할 지루한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 한국이면 한국어로 수업을 하란 말야. 투덜거려보지만 교수님이 그런 가람의 마음을 알아줄 리는 없다. 심지어 평소보다 발음을 더 먹는 듯 하다.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짜증만 치솟는다. 칠판의 필기도 흐릿흐릿하고 앞 자리 사람들에 가려서 알아보기도 어렵다. 가람은 어떻게든 필기를 해보겠다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고개를 이리저리 빼보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그 때 옆에서 무언가가 쓱 밀려 왔다. 옆 자리의 남자다. 필기 받아적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가람이 불쌍했던 건지 제 필기를 옆으로 밀어주었다. 갑작스런 호의에 가람은 떨떠름하게 감사를 표하고는 펜을 잡았다. 하지만 가람이 예상치 못한 것은 글씨란건 가까이 있다고해서 꼭 알아보기 쉬운 건 아니란 것이었다. 대학생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개발새발 글씨라니. 좋은 뜻으로 보여준 것일 텐데, 미안하지만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가람은 적당히 잘 본 척하고 노트를 돌려줘야겠다, 하고 마음먹었지만 정작 입에서 튀어나온 건 전혀 다른 대사였다.

하나도 못알아보겠어.”

가람은 제 말에 놀라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래저래 짜증나는 수업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본 성격이 나왔나 보다. 망했군. 속으로 경솔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상대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의외로 그는 별로 불편한 기색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조금 기분 좋은 듯한 미소가 만연하다. 남자는 가람 쪽으로 몸을 숙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한다. 어째선지 귀에 흘러들어오는 음성이 찌릿하다.

 

그럼 수업이 마치면 직접 읽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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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上

 

현우는 현무 가의 일을 마친 후 중앙으로 돌아왔다. 늘 시끌벅적하던 이곳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그의 몸에 밴 피비린내가 밤공기에 스며든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매화장에는 달빛만 매달려 있다. 매일 보는 곳인데도 어딘가 낯설었다. 현우는 이지러지는 달빛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 그 끝에 걸린 붉은 머리칼의 소년을 발견하였다. 은찬이었다.

 

웬일입니까,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은찬은 갑작스러운 현우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 그냥 잠이 안 와서 달 구경이나 할까 하고. 너도 앉을래?”

 

현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깨물다가 은찬의 옆에 앉았다. 그라면, 오늘의 현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몇 번을 씻었는데도 아직 피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매화장의 시간은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고 유난히 고요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정적을 깬 것은 은찬이었다.

 

현우야

, 공자.”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난 네가 나에게 좀 더 의지하면 좋겠어.”

 

현우는 곧바로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를 바라보는 은찬의 곧고 바른 눈이 따갑게 느껴진다. 은찬은 분명 지금까지 자신을 기다린 것이리라. 집에 다녀오면서 밤에 피 냄새를 풍기고 오는 연인이라면 수상할 수밖에. 현우는 오늘따라 감상적이시네요, 하고 우물우물 말을 돌리며 시선을 내리 깔 뿐이다. 그 말을 들은 은찬의 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것은 그의 뺨 위로 달빛이 흘러내리는 환상 탓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할걸. 후회하며 애꿎은 입술만 뜯는데 은찬이 다시 한 번 현우를 불렀다.

 

기다릴 테니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괜찮아.”

그러고는 현우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갠다. 꽤 오래 밖에 있었을 텐데도 맞닿은 손이 따뜻하다. 흘러가는 구름에 달이 사라지고, 겹쳐지는 둘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살짝 숨는다.

 

*

 

달은 결코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법이다. 현우 역시 그러했다. 아마도 은찬은 그것이 섭섭한 것일 터이다. 그는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그러나 모든 진실을 공유하기에 현우와 은찬은 너무나 다르다. 현우의 눈에 그는 스스로도 빛이 난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빛이다. 닿을 때마다 녹아버릴 것만 같은. 그에 반해 현우 자신은 그런 그의 모습을 그림자처럼 따라 할 뿐이다. 결국 현우는 은찬을 사랑하긴 하지만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자신은 원래 그렇게 키워진 짐승이니까.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불안하다. 은찬은 이런 자신을 알고도 지금처럼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현우는 자신이 없다. 곧 놓아야 할 손임을 알면서도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

 

미안하구나, 현우야

할머님이 사과하실 것은 없습니다.”

 

이별의 때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찾아왔다. 현무 가에 다녀온 뒤부터 이미 예감한 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싱크홀. 그것은 분명히 현무가의 소행이었다. 주술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무고한 일반 시민들을 휘말리게 하지 말 것. 그것이 주술가들 사이의 맹세이자 서약이었지만 현무가 내에서 그러한 질서는 무너진 지 오래로 온갖 어둡고 더러운 의뢰가 판을 친다. 여느 때라면 현무의 강력한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적정선에서 그들의 사업을 유지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주술도 쓰지 못하는 반쪽짜리 현무와 유약한 가주는 자신의 가문을 지켜내지 못 했다. 하늘은 몇 번이고 도를 넘은 현무 가에게 경고를 내렸었고, 이번 일로 그 경고도 마지막이 된 것이다. 현우는 이곳 중앙으로부터 나가야 한다.

 

 

결국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은찬이 학교에 간 동안 현우는 떠날 채비를 했다. 이렇게 말없이 간다면 그는 분명 화내겠지. 속에서부터 씁쓸한 웃음이 밀려나온다. 그래도 지금 갈 수밖에 없다. 괜히 현우는 이곳에 없는 은찬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내보았다. 전 공자를 사랑한 적 없습니다. 믿은 적도 없습니다. 날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다시 돌아올 일은 없으니까요. 그의 상처가 붉은 피가 되어 현우의 가슴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듯하다. 모든 것이 끝이다. 정말 모든 것이 끝이다. 이곳에서의 짧은 행복도. 그와의 사랑도.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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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아


몇 번이고 숨을 다시 들이마셨다. 이곳은 도시의 절벽이다. 옥상의 차가운 공기가 빨려 들어온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이 이 도시로부터 떠날 수 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와도, 구질구질하게 매달렸던 과거와도 멀어질 수 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가람은 쉽게 행동을 옮길 수가 없었다. 아직도 뭔가 미련이 남은 걸까. 옥상에 올라온 것은 이번이 처음 일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유령처럼 존재를 잃어갈 때마다 이곳에 왔었다.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지만 그 때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세상에 존재할 이유 하나 찾지 못하면서도 가람은 살고 싶어서, 죽는 게 무서워서 그 자리에 계속 고여 있다.

 

옥상에서 내려온 뒤에 보는 세상은 평소보다도 더 적막하고 싸늘하다. 새벽이라 사람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좀 더 근본적인 외로움이 존재한다. 혼자서 멍하니 첫 차를 기다리고 있으려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가람은 정류장 표지에 기대어 몸을 둥글게 말고 고개를 숙였다. 새벽 내내 그곳에 있었던 지라 피로를 호소하는 몸에 눈이 슬슬 감긴다.

 

누가 보면 가출 청소년인줄 알겠군

그러고 얼마쯤 지났을까. 가람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눈앞에 있는건 붉은 머리의 소년이다.

 

이런 곳에서 자면 감기 걸려

 

소년의 말투는 또래의 고등학생답지 않게 상냥했다. 사실 가람은 이렇게 남이 먼저 말을 거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누군가가 다가서면 자기도 모르게 털을 세우고 만다.

 

상관없잖아

 

소년은 그래도 추우니까... 하며 말을 흐리며 난감한 듯 웃는다. 그러더니 불쑥 손에 쥐고 있던 음료를 내민다.

 

...... 이거 아직 입 안댔으니까, 괜찮다면 너 마셔.”

 

방금 그런 말을 들어놓고 이런 행동이라니 붙임성도 좋다. 가람은 저도 모르게 내민 음료를 받았다. 얼어붙었던 손에 온기가 전해진다. 고맙다는 말 대신 빨대를 물었다. 따뜻한 코코아가 몸에 퍼지는 느낌이 썩 나쁘지 않다.

 

소년은 그런 가람을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가람은 모르겠지만 소년은 가람을 본 적이 있었다. 반은 다르지만, 같은 학교라 지나가면서 몇 번 마주쳤다. 언제나 혼자서 아무 말 없이 걷는 가람의 모습에 한 번쯤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도통 기회가 없었다. 오늘 일찍 일어난 건 지금을 위해선지도 모른다.

 

그럼,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

가람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씨익 웃고는 돌아섰다. 소년의 발걸음이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곧 버스가 도착해서 가람도 몸을 일으켰다. 다 마신 캔을 버릴까 하다가 들고 올라탄다. 아직도 캔을 쥔 손이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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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함

 포기는 습관성이다. 특히 사랑에 관한 문제라면 더욱 그러한 경향을 가진다. 적어도 가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은 이미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것 따윈 기대하지 않는다. 부모에게조차 버려진 자신을 그 누가 사랑해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발버둥 칠수록 비참해지는 것은 자신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런 것 따위 필요 없는 척하며 빳빳하게 털을 세우고 살아왔다. 상처받기 전에 미리 포기한다면 괜찮을 거라 믿으면서.


 주은찬을 만났던 그 때에도 가람은 여전히 그렇게 생각했었다. 같은 사방신 후계자라고 해서 친해질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거부감이 드는 쪽이었다. 그에게서는 가람과 다른 달큰한 향기가 났다. 어딘가 사람을 안정시켜주는 향기. 그것은 머리맡에서 간질거리는 봄날의 햇살 같기도 하고 부드럽게 상처까지 감싸 안아주는 산들바람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은찬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였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향기라니 그런 건 정말 질색이다.


 하지만 은찬은 가람을 놓칠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때까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람의 태도에 질려서 다가오는 것을 포기했었다. 너와 어울리기 싫다는 티를 팍팍 내는, 아무것도 볼 것 없는 남자아이에게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 그런데도 은찬은 몇 번이고 거부당하면서도 손을 내밀었다. 가람은 그것이 불쾌했다. 자신은 그런 달착지근한 향을 내는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은찬의 웃는 얼굴도, 이름을 부르는 다정한 목소리도 싫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그처럼 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서 가람마저 이끌리게 된다. 이미 마음이 은찬의 향에 이끌려 그를 향해 엎질러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가람은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이 너무나도 어색하고 두려웠기에. 지금의 관계는 가람에게 있어선 너무나도 아슬아슬하다. 가람은 매번 더 빠져들기 전에 거리를 두자고 결심했다. 이번에도 미리 포기해야 상처받지 않을 것이다.

*

청가람, 내가 뭐 도와줄 거 없어?”


 문 여는 소리가 나더니 은찬이 들어왔다. 은찬은 매 번 필요없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저녁시간마다 가람을 찾아온다. 도대체 왜 너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 건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오늘도 그의 향에 취해버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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