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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19 [찬현] 꽃 한 송이
  2. 2014.10.19 [찬현] 달 上

꽃 한 송이

아직 방을 치울 엄두가 않는다. 이곳의 시간은 밖보다 조금 느리게 흘러서 네 모든 것이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제 나는 잠든 너의 파리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삼키는 것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즐거웠던 추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이제 나에게는 모두 짐이다. 어째서 너만 나를 두고 홀몸으로 훌쩍 여행을 떠나버린 건지.

 

일어서는 것도 버거워하는 주제에 밖에 나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너의 투정에 못 이겨 짚 앞의 공원에 산책을 간 적이 있었다. 전에는 매일 봤었던 흔한 풍경이 뭐가 좋다고, 너는 연신 미소를 띠며 나를 불러댔었지. 공자, 이것 보십시오. 나비가 절 따라다닙니다! 구름이 정말 예뻐요. 나는 그 때 너의 뒤로 다가가 동백꽃 한 송이를 너의 머리에 올려 주었었다. 남자에게 무슨 꽃이냐며 쑥스러운 듯 꽃잎처럼 얼굴을 붉히던 너의 모습이 나에겐 너무 생생해서 아직도 손을 뻗으면 너의 발그레한 뺨을 쓰다듬을 수 있을 것만 같다.

 

네가 없이 난 살아갈 수 있을까. 그저 너는 잠깐 여행을 떠난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의미 없는 질문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았다. 손에 잡히는 말라비틀어진 꽃잎이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너는 이미 없는데도 나는 환상이 실어다주는 너의 향기 속에서 그저 갇혀있다. 너는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자꾸 피어난다. 그 날의 그 붉은 꽃잎처럼, 뚝뚝 떨어져 내리면서도 자꾸.

 

아직도 내 마음 속에서 자꾸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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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셔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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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上

 

현우는 현무 가의 일을 마친 후 중앙으로 돌아왔다. 늘 시끌벅적하던 이곳도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문이 열리는 동시에 그의 몸에 밴 피비린내가 밤공기에 스며든다. 이미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매화장에는 달빛만 매달려 있다. 매일 보는 곳인데도 어딘가 낯설었다. 현우는 이지러지는 달빛을 따라 시선을 돌리다 그 끝에 걸린 붉은 머리칼의 소년을 발견하였다. 은찬이었다.

 

웬일입니까,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멍하니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던 은찬은 갑작스러운 현우의 등장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매만졌다.

 

...... 그냥 잠이 안 와서 달 구경이나 할까 하고. 너도 앉을래?”

 

현우는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깨물다가 은찬의 옆에 앉았다. 그라면, 오늘의 현우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몇 번을 씻었는데도 아직 피 냄새가 가시지 않은 것 같다. 매화장의 시간은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흐르고 유난히 고요한 공기가 두 사람을 감쌌다. 정적을 깬 것은 은찬이었다.

 

현우야

, 공자.”

뜬금없는 소리 같지만, 난 네가 나에게 좀 더 의지하면 좋겠어.”

 

현우는 곧바로 말을 잇지 못 했다. 그를 바라보는 은찬의 곧고 바른 눈이 따갑게 느껴진다. 은찬은 분명 지금까지 자신을 기다린 것이리라. 집에 다녀오면서 밤에 피 냄새를 풍기고 오는 연인이라면 수상할 수밖에. 현우는 오늘따라 감상적이시네요, 하고 우물우물 말을 돌리며 시선을 내리 깔 뿐이다. 그 말을 들은 은찬의 모습이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것은 그의 뺨 위로 달빛이 흘러내리는 환상 탓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거짓말이라도 할걸. 후회하며 애꿎은 입술만 뜯는데 은찬이 다시 한 번 현우를 불렀다.

 

기다릴 테니까, 지금 당장이 아니라도 괜찮아.”

그러고는 현우의 손 위에 제 손을 포갠다. 꽤 오래 밖에 있었을 텐데도 맞닿은 손이 따뜻하다. 흘러가는 구름에 달이 사라지고, 겹쳐지는 둘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살짝 숨는다.

 

*

 

달은 결코 뒷모습을 보이지 않는 법이다. 현우 역시 그러했다. 아마도 은찬은 그것이 섭섭한 것일 터이다. 그는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그러나 모든 진실을 공유하기에 현우와 은찬은 너무나 다르다. 현우의 눈에 그는 스스로도 빛이 난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빛이다. 닿을 때마다 녹아버릴 것만 같은. 그에 반해 현우 자신은 그런 그의 모습을 그림자처럼 따라 할 뿐이다. 결국 현우는 은찬을 사랑하긴 하지만 믿지는 못하는 것이다. 자신은 원래 그렇게 키워진 짐승이니까. 그래서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은 행복하지만 불안하다. 은찬은 이런 자신을 알고도 지금처럼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현우는 자신이 없다. 곧 놓아야 할 손임을 알면서도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

 

미안하구나, 현우야

할머님이 사과하실 것은 없습니다.”

 

이별의 때는 생각보다도 더 빨리 찾아왔다. 현무 가에 다녀온 뒤부터 이미 예감한 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발생한 싱크홀. 그것은 분명히 현무가의 소행이었다. 주술은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무고한 일반 시민들을 휘말리게 하지 말 것. 그것이 주술가들 사이의 맹세이자 서약이었지만 현무가 내에서 그러한 질서는 무너진 지 오래로 온갖 어둡고 더러운 의뢰가 판을 친다. 여느 때라면 현무의 강력한 힘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적정선에서 그들의 사업을 유지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주술도 쓰지 못하는 반쪽짜리 현무와 유약한 가주는 자신의 가문을 지켜내지 못 했다. 하늘은 몇 번이고 도를 넘은 현무 가에게 경고를 내렸었고, 이번 일로 그 경고도 마지막이 된 것이다. 현우는 이곳 중앙으로부터 나가야 한다.

 

 

결국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은찬이 학교에 간 동안 현우는 떠날 채비를 했다. 이렇게 말없이 간다면 그는 분명 화내겠지. 속에서부터 씁쓸한 웃음이 밀려나온다. 그래도 지금 갈 수밖에 없다. 괜히 현우는 이곳에 없는 은찬에게 모진 말로 상처를 내보았다. 전 공자를 사랑한 적 없습니다. 믿은 적도 없습니다. 날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다시 돌아올 일은 없으니까요. 그의 상처가 붉은 피가 되어 현우의 가슴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는 듯하다. 모든 것이 끝이다. 정말 모든 것이 끝이다. 이곳에서의 짧은 행복도. 그와의 사랑도.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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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셔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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